2021년 하반기 KBS2에서 방영된 사극 로맨스 드라마 《연모》는 “쌍둥이 남매 중 오빠가 죽자, 여동생이 오빠를 대신해 왕위에 오른다”는 독창적인 설정으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젠더 정체성, 권력 구조, 사랑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은 이 드라마는,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시대극의 경계를 확장한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받았습니다. 본 작품은 이소영 작가의 동명 웹툰 《연모》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박은빈과 로운의 깊이 있는 감정 연기, 세련된 연출, 치밀한 각본이 어우러져 국내외 시청자들에게 큰 울림을 전했습니다.
1. 시대적 배경 – 허구의 조선,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서
드라마 《연모》는 조선시대를 기반으로 하되, 실제 역사 속 인물을 따르지 않는 가상 역사극입니다. 배경은 조선 후기의 궁중과 유교 질서를 반영하지만, 설정 자체는 철저히 허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성이 세자가 되어 왕에 오른다”는 전례 없는 구조는 조선시대의 강한 남성 중심 정치 질서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만약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어떨까’라는 상상력에서 출발합니다.
작품 속 이휘는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쌍둥이라는 이유로 버려지고 이후 오빠의 사망으로 다시 궁에 들어와 남장을 하고 세자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는 실제 조선의 금기였던 ‘쌍생’과 ‘여성 권력 금지’라는 두 가지 규범을 동시에 거스르는 설정으로, 그 자체로 강력한 서사를 형성합니다.
드라마는 당시의 예법, 궁중 예절, 반상제 사회의 구조 등을 철저하게 고증하면서도, 왕의 정체성을 여성으로 전환함으로써 ‘권력은 누구의 몫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휘가 왕으로 존재하는 방식은 단순히 남장을 한 여성이 아닌, ‘여성으로서도 능력과 책임감을 갖춘 통치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연모》는 허구의 세계 속에서 오히려 가장 진실한 질문을 꺼내는 드라마입니다.
2. 원작 만화 정보 – 웹툰 《연모》, 섬세한 감정의 시작
드라마의 원작은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된 이소영 작가의 동명 만화 《연모》(2009~2016)입니다. 이 작품은 연재 당시부터 강한 팬덤을 형성했으며, ‘사극 + 젠더 서사 + 정치 로맨스’라는 독특한 조합으로 웹툰계에서도 이례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만화의 기본 줄거리는 드라마와 비슷합니다. 세자빈이 쌍둥이를 낳자, 왕은 예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여자아이를 제거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몰래 살아남은 아이는 ‘대미령’이라는 이름으로 자라다가 세자가 사망한 후 궁으로 돌아와 오빠 대신 세자가 됩니다. 이후 이휘라는 이름으로 왕이 되어, 남성으로 살아가며 정치, 정체성, 사랑을 동시에 경험하게 됩니다.
원작 웹툰은 특히 이휘의 내면 심리를 깊이 있게 묘사하는 데 탁월했습니다. 왕이라는 무게와 여성이라는 정체성, 그리고 감정의 혼란을 매우 섬세하게 풀어냈고, 정치와 궁중 내 권력 게임도 진지하게 다루며 성숙한 분위기의 작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드라마는 이 원작의 골격은 유지하면서도, 캐릭터와 전개를 좀 더 현대적 감성에 맞춰 각색했습니다. 특히 로운이 연기한 ‘정지운’ 캐릭터는 드라마 오리지널로, 시청자들의 몰입을 돕기 위해 감성적 로맨스의 축을 강화했습니다. 또한 정하경, 김가온 등 여러 인물의 비중도 조절하여 감정과 서사를 균형 있게 배분했습니다. 원작 팬들과 새로운 시청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구조로 발전시킨 셈입니다.
3. 주요 등장인물 – 비밀과 감정의 조화 속에 피어난 연모
이휘 / 대미령 (박은빈)
쌍둥이 중 여아로 태어나 궁 밖에서 자라다, 오빠의 죽음으로 인해 세자 자리에 오르게 되는 인물입니다. 남장을 하고 살아가지만, 내면에는 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외로움을 품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냉정하고 완벽한 군주지만, 인간으로서는 상처 많고 따뜻한 인물입니다. 박은빈은 이휘 역을 통해 감정의 폭과 깊이를 모두 보여주며 호평을 받았습니다.
정지운 (로운)
궁중 의원으로, 순수하고 따뜻한 성품을 가진 인물입니다. 이휘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점점 그녀에게 빠져들고, 자신의 감정에 당황하게 됩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휘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 이후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로운은 첫 사극 도전임에도 안정적인 연기로 존재감을 입증했습니다.
김가온 (최병찬)
이휘의 그림자이자 호위무사로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과묵하고 충직하며, 과거에 얽힌 비밀을 안고 있어 극의 긴장감을 더합니다. 묵묵히 휘를 지키는 모습에서 깊은 우정과 충성의 상징으로 작용합니다.
노하경 (정채연)
이휘의 정혼녀로, 정략결혼의 희생양처럼 등장하지만 점차 휘의 내면을 알아가며 복잡한 감정선을 그립니다. 단순한 경쟁자가 아닌, 또 다른 여성 서사를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정채연은 단아한 비주얼과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역할을 완성했습니다.
그 외에도 조정의 대신들, 상궁, 대왕대비 등의 인물들이 등장해 사극 특유의 정치적 긴장감과 궁중 내 갈등 구조를 입체적으로 채워줍니다. 모든 인물은 주제의식을 강화하고, 휘와 지운의 서사를 밀도 있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결국 《연모》의 진짜 주제는 ‘사랑’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타인의 진심을 이해하려는 용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모든 감정선은 “연모”라는 말 한마디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